산중가(1977, 참깨를 털면서) - 김준태
산골의 고영감네 집은 가마득하다네
처마 밑에 고사리 다발이 걸려 있고
부엌엔 갈치 두 마리 먹음직하게 매달려 있고
마당귀에 돼지 오줌을 엎지른 두엄이 쌓여 있고
헛간엔 어제 만든 싸리비가 세워져 있고
뒷 울안에 감나무잎이 바람을 말아올려 소곤거리고
변소간의 망태엔 종이 아닌 지푸라기가 들어 있고
여덟자 정도의 방엔 풍년초 한 봉이 놓여 있고
식구란 고영감과 그의 늙어빠진 아내뿐이고
책 한 권도 먼지 묻은 족보도 없지만
밤마다 산딸기 소롯소롯 배인 빨간 꿈속마다
여순 반란 사건 때 죽은 아들이 울고 오나니
가득한 집안을 참쑥냄새의 울음으로 텅 비우고 가나니
꼭 핏줄을 이을 아들 하나 남기고자
피마자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빗질을 한다네
고영감은 곰보인 젊은 과부를 흘리기 위하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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